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 (문단 편집) == 허술한 대응 == 사건 당시 경호원들의 대응은 '''엉망이다 못해 최악 그 자체'''였다. 이 사건에서 경호원들이 보여준 대응은 정말이지 이보다 더 나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형편없었고 완전히 총체적 난국이었다. 우선 가장 큰 실책은 비표(출입증)가 없는 사람을 통과시킨 것. 앞에서 설명한 대로 당시 문세광은 비표가 없었는데 고급 외제차를 타고 [[일본어]]를 쓰면서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일본인인 척 하자 몸 수색 없이 출입을 허가해 버렸던 것이다. 이로부터 교훈을 얻은 청와대 경호실은 이후 어떠한 경우라도 예외 없이 출입증을 검사하고 몸수색을 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박정희가 연설을 하던 중 '텅'하는 금속성 소리가 울렸을 때 오케스트라석에 앉아 있었던 단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뒤로 돌렸지만 객석, 단상 위의 경호원들과 박정희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이것부터가 경호원들의 어이없는 실책이다. 저게 총성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더라도 일단 총성과 유사하거나 무언가 확인되지 않은 소리가 들린 시점에서 경호원들은 즉시 박정희를 감싸거나 연단에서 내려오게 하고 주변을 경계했어야 한다. 만약 그랬다가 총성이 아니라 다른 소리를 오해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경호원들의 책임은 전혀 없다.[* [[아베 신조 피살 사건]]에서도 초탄이 빗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경호원들은 금쪽같은 3초를 날려 버렸고 [[야마가미 데쓰야|범인]]은 차탄으로 아베 신조를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문세광은 당황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 쪽을 달리면서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 객석에 배치된 경찰들과 경호원들은 그가 권총을 들고 유유히 통로를 뛰어다니는 걸 봤는데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이후 그를 경호원으로 착각해서 그랬다고 하는데 갑작스러운 상황이니 민간인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경호원이 할 착각은 아니다. 결국 한 발이 아니라 대여섯발 넘게 발사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연단에 맞아서 그렇지 조금만 위로 날아갔더라면 '''박정희를 죽인 사람이 [[김재규]]가 아니라 문세광으로 역사에 남았을 것이다.''' 이때 가장 빠르게 상황 판단을 한 사람이 당시 단상 위에 앉아 있었던 [[박종규]] 경호실장이다. 그가 박정희 쪽으로 뛰어오는 걸 보자마자 앞으로 뛰쳐나가 쏘려고 했다. [[파일:u4VoBh2.png]] [[파일:/image/108/2005/02/11/2005021119402128109_1.jpg]] 당시 송출된 방송 화면 캡처 장면. 역광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 박종규 경호실장이고 왼쪽 하단의 검은 형체가 범인 문세광이다. 그는 일어서더니 권총을 들고 단상 앞으로 뛰어나왔고 그가 일어선 것은 문세광이 제1탄을 쏘아 ‘퍽’소리가 난 지 5초 정도 지난 때였다. 그는 문세광을 향해서 쏘려고 단상 앞으로 뛰어나오다가 관중석이 조명으로 너무 환해 눈이 부셨다. 표적을 잃은 것이었다. 이 행동에 대해 1998년 청와대 경호실이 펴낸 사례보고서는 이렇게 지적했다. >경호실장이라면 범인에 대한 응사가 主가 아니라, 피경호인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연대로 나와 피경호인의 머리를 숙이게 조치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스스로 연대 위에 몸을 숨긴 시기는 2탄이 연대에 맞은 후이거나, 3탄이 불발된 이후이기 때문에 범인이 제2탄을 정확히 사격했거나, 3탄이 불발되지 않았더라면 저격이 성공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1998년 경호실의 사례연구서는 육영수 여사 피격은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범인이 대통령을 좀더 가까운 거리에서 저격하기 위하여 통로를 달리면서 총을 쏘는 상황인데도 통로 좌우측에 앉아 있던 경찰근무자들은 아무런 경호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저 앉아만 있었다. 총을 쏘는 범인을 밀어 넘어뜨리거나 정조준을 할 수 없도록 범인의 몸을 건드리기만 했어도 육 여사는 머리에 총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위에 설명한 대로 박종규 경호실장이 범인과 대적 자세를 취한 게 잘 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문제는 경호원의 최우선 임무는 어디까지나 '''요인의 경호이지 위험인물의 제압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박종규는 맞대응으로 총격전을 벌일 것이 아니라 연대로 나와 박정희부터 보호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범인을 쏘려고 단상 앞으로 뛰쳐나왔고 정작 그마저도 실패했다. 김덕년 경호원은 첫 번째 총성이 들리자 바로 커튼을 제끼고 단상으로 달려오는 범인을 향해 조준사격을 했으며 이 총알이 범인의 다리를 스쳤다고 주장했지만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만약 범인이 2인 이상이었다면 이 과정에서 경호 공백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이 과정에서 장봉화 양이 숨진 것도 문세광이 아닌 '''경호원 측에서 쏜 총에 맞은 게 원인'''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영부인의 목숨을 지키지도 못했으면서, 어설프게 총격전이나 벌이다가 민간인 희생자만 추가로 일으킨 것이다. 다른 경호원들의 대응도 최악이었다. 경호원들은 총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오지 않고 있다가 범인이 제압된 후에야 뒤늦게 박정희를 호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한 술 더 떠서 경호원 중 한 명은 겁에 질린 나머지 육영수 여사 뒤에 숨어 버리기도 했다. [[주객전도|경호를 해야 할 사람이 경호 대상을 이용해서 자신을 호위한 셈이다...]] 범인이 체포된 후에도 경호원들의 어이없는 대응은 이어졌는데, 대통령에게 연설을 그대로 하게 놔 두는 행동을 저지른 것. 자신을 향한 총탄이 빗나가 신변이 몹시 위험한 상황에서도 예정대로 그대로 진행하는게 '담대한 대통령'처럼 보일진 몰라도 경호 측면에서 보면 이건 정말로 말도 안 되는 행위다. 암살자가 제압되었다고 하더라도 행사장 안에 제 2, 3의 범인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러한 행동은 매우 위험하다.[* 예를 들어 [[사라예보 사건]]의 경우 5명이나 암살에 투입되었다. 그 중 첫 암살 시도는 황태자의 차에 폭탄을 던졌다가 실패했고 흔히 알려진 권총을 쏜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원래 황태자의 행선이 변경되어 암살을 포기했다가 우연히 황태자 일행과 만나면서 암살에 성공했다.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도 예비로 거사를 계획한 별도의 인물들이 있었다. 주요인물을 암살한다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인 만큼 암살하는 쪽에서도 세세하게 준비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 사건은 그나마 문세광의 단독범행이었기에 저렇게 했어도 문제는 없었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해석이다.] 다만 연설을 계속한 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고집 때문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당시의 권위주의적인 청와대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대통령이 연설을 마저 하겠다고 하는데 그걸 경호 측에서 제지할 수 없었다. 즉, 사건 발생 이후에도 연설을 이어나간 것은 경호 측의 미스라기보다는 대통령의 실책이었다. 그는 한 술 더 떠 아예 그 다음 예정되어 있던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식[* 이 날은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철이 개통되는 날이기도 했다. 원래는 성대한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하필 직전에 일어난 대통령 암살미수+영부인 피격 사태 속에서 조촐하게 진행했다.]도 가려고 했으나 만류 끝에 가까스로 결심을 꺾고 참석을 포기했다고 한다. 한 나라의 영부인을 지키지 못해서 결국 사망하게 만들고 전혀 상관없는 방청객까지 실수로 죽인 역대 최악의 경호 참사이기 때문에 대통령경호처 경호원으로 들어갈 때 이 사건에 대해서 반드시 배우고 넘어간다. 경호원들의 입장에서는 '''[[반면교사|이 사건만큼 배울 점이 많은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